귀농귀촌 큰집은 No ! 시골살이 적성에 맞는지 우선 적성 검사
귀촌의 이상적인 삶을 꾼꾼다면 꿈이 아닌 냉정하게 차가운 현실을 직시..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하는 우를 범한 후 후회하고 되돌리기엔 댓가가 너무 가혹함
전문가들은 귀촌 희망자는 당신의 적성부터 면밀히 점검하라고 권유
때로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을 태연히 자행하는 게 인간이지만,
자신의 적성 진단을 소홀히 한 채 자연과 더불어 살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겠다는 식의 환상을 가지고 귀촌을 후다닥 결행하는 일처럼 위험한 우행도 드물다.
등산을 좋아하거나, 숲을 흔드는 물소리 새소리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다고
내 적성이 시골생활에 부합하리라 속단해선 안 된다.
짧으면 한두 달, 길어야 두어 해 사이에 질리기 쉬운 게 자연이다.
자연은 놀이터가 아니라 생활의 장이다.
귀촌 문제를 놓고 부부간에 대번에 죽이 맞을 확률은 낮다.
대체로 남정네들이 먼저, “가자, 시골로!” 그렇게 선창을 하며 나서는 수가 많지만,
웬걸, 영특한 종족인 아내들은 십중팔구 반기를 들게 마련이다.
그녀들은 모기에 뜯기고 뱀에 시달리기나 할 뿐,
자칫 따분하고 외로워질 가능성이 있는 시골살이에 환상적으로 입문할 일이 아님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엔 신사도를 발휘해 아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게 좋다.
나는 억지로 아내를 끌고 시골로 들어갔다가 4년 만에 이혼을 하고 털레털레 도시로 귀환한
부상병의 사연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럴싸한 집요한 세뇌로 아내의 생각을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면 귀촌의 꿈을 차생에서 실현하는 게 낫다.
물적 궁핍이 곧 불행과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꽤나 성가시고 불편하다.
마을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불찰
공직 은퇴자인 B 씨. 그는 60대 중반쯤 도시에서의 지루한 일상을 견디다 못해 후미진 시골로 들어갔다.
평소 동경했던 멋진 정원을 가꾸며 한적하게 노닐고 싶어서였다.
그는 너른 터를 사들여 큼직한 집을 지었다.
그리고 정원 가꾸기에 온갖 공을 들였다.
신명이 실린 쾌조의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2년여가 지나 상황이 급변했다.
다양한 수목과 화초로 채운 너른 마당은 어느 사이 가혹한 근로의 공간으로 바뀌었으니
땅의 임자는 그가 아니라 풀들이었던 것.
강철 같은 기세로 들고 일어서는 풀과의 전쟁에 그는 지쳐 나동그라졌다.
어깨, 허리, 무릎, 팔,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는 자신의 참상에 그는 울상을 지었다.
사교성 결여로 원주민들과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이에 누적된 고독감마저 하늘에 뻗친 걸
비로소 절감하고 거듭 울상을 지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게다가 도시에선 그토록 명랑했던 아내가 우울증에 걸려 약을 먹기 시작했다.
더욱 끔찍한 소동은 이웃 원주민이 휘몰아왔다.
마을의 몇몇 삐딱이 가운데 하나였던 그 원주민은 고지식하고 딱딱한 스타일인 B 씨네
집 길목을 제 땅이라며 철조망으로 막아버렸다.
땅을 고가에 팔아 먹자는 흉계였다.
B 씨는 결국 헐값에 집을 처분하고 도시로 돌아갔다.
B 씨는 신중함을 결여한 채 충동구매와도 같은 귀촌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무엇에 앞서 그는 마을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했어야 했다.
시골이라고 인심이 퍼덕퍼덕 살아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운수 사납게도 텃세 심하기로 소문난 마을로 귀촌을 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끝내 깨닫지 못한 자충수도 있다.
원주민들이 B 씨에게 불편한 존재였듯이,
오불관언으로 일관한 B 씨 역시 원주민들에겐 수상하고 불편한 이방인으로 행세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원주민과의 융화라는 문제에 대부분의 귀촌·귀농인들은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고서도 수월치 않아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고민하기도 한다.
어이하나?
마을 일에 적극적인 참여자는 되지 못할망정 냉소적 방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